작성자: sonslab | 발행일: 2025년 4월 26일

들어가며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인공지능의 역사는 마치 계절의 순환과도 같았습니다. 따스한 봄날의 희망과 열정이 가득한 시기가 있는가 하면, 혹독한 겨울처럼 연구가 침체되고 후원이 끊기는 암흑기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인공지능 발전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시기인 'AI 겨울'과 그 이후의 '르네상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 역사적 순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과거의 실패와 부활이 오늘날의 AI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과도한 약속과 첫 번째 겨울 (1974-1980)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1950-60년대는 AI 연구의 황금기였습니다. 허버트 사이먼은 1957년 "20년 안에 기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고, 마빈 민스키는 1967년 "한 세대 안에 인공지능을 만드는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초기 AI 시스템들의 성공은 대부분 매우 제한된 '장난감 세계(toy domains)'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1966년 ELIZA 프로그램이 심리상담사처럼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이는 단순한 패턴 매칭에 불과했습니다.
실제 세계의 복잡한 문제에 적용하려 하자 한계가 명확해졌습니다:
- 계산 능력의 한계: 그 시대의 컴퓨터는 현대 스마트워치보다도 처리 능력이 떨어졌습니다.
- 조합 폭발(Combinatorial Explosion): 체스와 같은 게임에서 가능한 상태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당시 기술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 지식 표현의 어려움: 인간이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을 컴퓨터에게 가르치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1973년 영국의 '라이트힐 보고서(Lighthill Report)'였습니다. 제임스 라이트힐 교수는 AI 연구가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고, 이는 영국에서 AI 연구 자금 삭감으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에서도 DARPA의 AI 연구 지원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바야흐로 첫 번째 AI 겨울이 시작된 것입니다.


The Lighthill debate on Artificial Intelligence: "The general purpose robot is a mirage"
전문가 시스템의 부상과 두 번째 겨울 (1987-1993)
1980년대 초, AI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s)'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부활의 기미를 보였습니다. 전문가 시스템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 지식을 규칙으로 코딩하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디지털 이큅먼트사(DEC)의 XCON 시스템은 컴퓨터 시스템 구성을 자동화했고, 연간 4천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의료 진단, 광물 탐사, 금융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 시스템이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성공에 힘입어 AI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일본의 제5세대 컴퓨터 프로젝트'와 같은 야심찬 국가 프로젝트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르네상스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 확장성 문제: 전문가 시스템은 규칙 수가 증가할수록 유지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 지식 획득의 병목 현상: 전문가의 암묵적 지식을 명시적 규칙으로 변환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 적응성 부족: 환경이 변하면 전체 규칙 체계를 재구성해야 했습니다.
- 하드웨어 시장 변화: 전용 LISP 머신이 일반 컴퓨터보다 가격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1987년 시장 붕괴와 함께 많은 AI 기업들이 파산했고, 1991년 일본의 야심찬 제5세대 프로젝트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습니다. 두 번째 AI 겨울이 찾아온 것입니다.
잔잔한 혁명과 르네상스를 향한 준비 (1993-2006)
흥미롭게도, '공식적인' AI 연구가 침체되는 동안에도 핵심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을 뿐입니다.
- 기계학습의 발전: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는 알고리즘들이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1995년 블라디미르 바프닉의 서포트 벡터 머신(SVM)은 분류 문제에서 혁명적인 성능을 보여주었습니다.
- 실용적 접근의 승리: 1997년 IBM의 딥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습니다. 이는 완벽한 인간 지능 모방이 아닌, 특화된 문제 해결에 집중한 결과였습니다.
- 확률적 방법의 도입: 베이지안 네트워크, 마르코프 모델 등 불확실성을 다루는 통계적 방법이 AI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 인터넷과 빅데이터의 등장: 웹의 발전은 전례 없는 규모의 데이터를 생성했고, 이는 후일 딥러닝 혁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로드니 브룩스와 같은 연구자들은 "지능은 복잡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는 '구현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은 규칙 기반 시스템에서 데이터 중심 접근법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했습니다.
딥러닝 혁명과 AI 르네상스 (2006-현재)
2006년은 AI 역사의 변곡점이었습니다. 제프리 힌튼이 딥러닝의 효과적인 학습 방법을 발견했고, 이는 인공신경망 연구의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몇 가지 결정적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 2011년 IBM 왓슨: 제퍼디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들을 이겼습니다.
- 2012년 알렉스넷(AlexNet): 이미지넷 경연대회에서 딥러닝이 전통적 컴퓨터 비전 기법을 압도적인 차이로 이겼습니다.
- 2016년 알파고: 딥마인드의 AI가 바둑 세계 챔피언 이세돌을 4:1로 이겼습니다.
- 2017년 트랜스포머 아키텍처: 자연어 처리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 2020년 GPT-3: 놀라운 텍스트 생성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전 겨울과 달리, 현재의 AI 르네상스는 단순한 과대 광고가 아닌 실질적인 성과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음성 비서, 추천 시스템, 자율주행 기술, 의료 진단 보조 등 실생활에서 AI 기술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2022년 이후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등장은 AI가 마침내 '대중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AI는 연구자들만의 도구가 아닌, 일반인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AI 겨울에서 배우는 교훈
AI의 역사적 부침은 단순한 기술 발전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인지적 편향과 사회적 역학에 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두 차례의 AI 겨울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들을 살펴봅시다.
과대 약속의 위험성
많은 AI 연구자와 언론은 AI의 가능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관심과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약속이 실현되지 않을 때 '기대 절벽(expectation cliff)'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자동차가 발명되었을 때, 더 빠른 말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이동 수단을 얻게 되었습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지능의 복제가 아닌, 전혀 다른 형태의 지능을 개발해야 합니다."
과대 약속은 단순히 실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현대 AI 커뮤니티는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딥러닝의 한계와 특정 도메인에서의 성공이 '일반 지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진화보다는 혁명적 변화
AI 발전의 역사를 보면, 진정한 도약은 기존 패러다임의 점진적 개선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에서 나왔습니다:
- 기호적 접근법 → 전문가 시스템 → 통계적 방법 → 딥러닝 → 대규모 언어 모델
각 패러다임은 이전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규칙 기반 시스템의 확장성 문제는 데이터 중심 접근법으로, 얕은 신경망의 한계는 심층 학습으로 극복되었습니다.
이는 연구 분야에서 다양성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주류 패러다임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비주류 연구가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제프리 힌튼은 거의 모든 사람이 신경망 연구를 포기했을 때도 꾸준히 연구를 이어갔고, 결국 딥러닝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기술 발전의 삼위일체: 알고리즘, 데이터, 컴퓨팅 파워
AI 겨울에서 르네상스로의 전환은 단일 요소가 아닌, 세 가지 핵심 요소의 동시 발전이 이루어졌을 때 가능했습니다:
- 알고리즘의 혁신: 역전파 알고리즘, 합성곱 신경망, 트랜스포머 등
- 데이터의 폭발적 증가: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의 빅데이터
- 컴퓨팅 파워의 기하급수적 성장: GPU, TPU와 같은 전용 하드웨어
이 삼위일체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현재의 AI 르네상스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1980년대 신경망 연구가 한계에 부딪친 이유 중 하나는 충분한 데이터와 계산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많은 AI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이 세 요소에 모두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알고리즘만 개선하거나, 데이터만 늘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단기적 실용성과 장기적 비전의 균형
AI 겨울의 또 다른 교훈은 너무 먼 미래만 바라보는 것의 위험성입니다. 초기 AI 연구자들은 인간 수준의 일반 지능을 목표로 했지만, 그 과정에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 문제들을 간과했습니다.
현대 AI는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장기적 비전을 유지하면서도 단기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균형 잡힌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 자율주행차는 '레벨 5' 완전 자율주행을 목표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차 보조, 차선 유지, 고속도로 자율주행 등 점진적 기능을 제공합니다.
- 의료 AI는 궁극적으로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의사의 진단과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도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AI 붐은 지속될 것인가?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AI 르네상스는 이전과 다른 특징을 보입니다:
- 실질적 성과: 이전 붐이 이론적 가능성에 기반했다면, 현재는 실제 작동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존재합니다.
- 산업 전반의 채택: AI는 특정 연구 영역을 넘어 거의 모든 산업에 통합되고 있습니다.
- 기술적 다양성: 단일 접근법이 아닌, 다양한 기술(강화학습, 자기지도학습, 다중모달 학습 등)이 함께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해야 할 요소들이 있습니다:
- 탄소 배출 문제: 대규모 모델 학습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 데이터 품질과 편향: 모델이 학습하는 데이터의 편향이 점점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 규제와 윤리적 우려: AI 사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발전 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기술적 한계: 딥러닝의 '블랙박스' 특성, 인과관계 추론의 어려움 등은 여전히 큰 과제입니다.
나가며: 겨울은 필연적인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AI 겨울이 올까요? 아마도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 겨울들의 교훈을 제대로 배운다면, 적어도 그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명한 접근법은 지나친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피하고, AI의 실제 가능성과 한계를 균형 있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만능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유행도 아닙니다.
AI의 역사는 기술적 도전뿐만 아니라 인간의 희망, 두려움, 그리고 상상력을 반영합니다. 우리가 AI 겨울과 르네상스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번영이 함께하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다른 AI 겨울이 올까요, 아니면 이번 르네상스는 지속될까요? 기술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Sonslab은 현재 반도체 MI 분야에서 엔지니어들에게 AI 기술을 활용하여 전자 현미경 이미지를 계측 분석하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AI의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과대 약속보다는 실질적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접근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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